용도발명

서론: 용도발명의 중요성

용도발명이란 이미 알려진 물질에서 새로운 유용성을 발견하여 특정 목적, 즉 새로운 ‘용도’에 적용하는 기술적 사상의 창작을 의미합니다. 특히 제약 산업에서 용도발명은 ‘신약 재창출(Drug Repositioning)’의 핵심 전략으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드는 신약 개발의 부담을 줄이고 기존 약물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된 실데나필이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로 재탄생한 것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입니다.

제1장: 용도발명의 법적 본질과 핵심 쟁점

한국 특허법상 ‘발명’은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적 사상의 창작”으로 정의됩니다. 용도발명은 물질의 미지의 속성(자연법칙)을 발견하고, 이를 특정 목적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기술 수단(새로운 용도)으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발견’이 아닌 ‘창작’으로 인정받습니다.
용도발명의 가장 중요한 법적 쟁점은 이를 ‘물건의 발명’으로 볼 것인지, ‘방법의 발명’으로 볼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한국의 판례와 심사 실무는 의약용도발명을 ‘물건(物)의 발명’으로 취급하는 확고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청구항은 “A를 유효성분으로 하는 B질병 치료용 약학 조성물”과 같이 특정 용도에 의해 한정되는 ‘물건’의 형태로 기재됩니다. 이는 용도발명을 ‘사용방법(method of use)’ 발명, 즉 방법발명으로 보는 미국, 유럽 등 주요국과 구별되는 한국 특유의 제도로, 특허권자에게 더 넓고 강력한 보호를 제공하는 기반이 됩니다. 이러한 독자적 입장은 과거 물질특허가 허용되지 않던 시절, 제약 산업의 혁신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적 고려가 현재까지 이어진 역사적 산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2장: 의약용도발명의 유형과 발전

의약용도발명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제1 의약용도발명: 공지 물질에 대해 ‘최초’의 의약 용도를 발견한 발명으로, 선행기술이 없어 특허성이 높게 인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2 의약용도발명: 이미 의약 용도가 알려진 물질에 대해 새로운 적응증(질병)을 발견한 발명입니다. 비아그라 사례처럼 신약 재창출의 대표적인 형태입니다.

투여용법·용량 발명: 동일한 질병에 사용하더라도 투여 주기, 투여량 등을 새롭게 특정하여 예측하지 못한 현저한 효과(약효 증대, 부작용 감소 등)를 달성하는 발명입니다. 과거에는 특허성을 인정받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2014후768 전원합의체 판결은 “투여용법과 투여용량은 의약물질이 가지는 미지의 속성의 발견에 기초하여 새로운 쓰임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대상 질병에 관한 의약용도와 본질이 같다”고 판시하며, 이를 독립적인 발명의 구성요소로 인정했습니다. 이는 용도발명을 ‘물건발명’으로 보는 한국의 법리가 논리적으로 확장된 필연적 귀결로, 의약 개량 발명의 보호 범위를 획기적으로 넓힌 중요한 판결입니다.

제3장: 특허성 판단 기준

의약용도발명이 특허를 받기 위해서는 명세서 기재요건, 신규성, 진보성을 충족해야 합니다.

명세서 기재요건: 의약용도를 뒷받침하는 약리효과 데이터가 특허출원 시 명세서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출원 이후에 취득한 실험 데이터를 보정을 통해 추가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는 출원 시점에 발명이 완성되었음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엄격한 요건입니다.

신규성: 성분 물질이 동일하더라도 ‘의약용도’가 다르면 서로 다른 발명으로 보아 신규성을 인정합니다.

진보성: 선행기술로부터 발명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는지가 핵심입니다. 구성의 도출이 용이해 보여도 예측할 수 없는 현저한 효과가 있다면 진보성이 긍정될 수 있습니다. 글리벡 사건(2016후502 판결)에서는 선행문헌들을 종합할 때 특정 치료 효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면, 실제 임상 데이터가 없더라도 진보성이 부정될 수 있다고 보아 예측가능성을 엄격하게 판단했습니다. 반면, 투여용법·용량 발명(2014후768 판결)의 경우, 통상적인 실험을 넘어 예측 불가능한 현저한 효과가 수반될 때 진보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제4장: 청구항 기재 방식의 국제 비교

특허권의 범위는 청구항에 의해 결정되므로 작성 방식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 ‘물건발명설’에 따라 “A를 유효성분으로 하는 B질병 치료용 약학조성물” 형태가 표준입니다.

유럽(EPO): 인간의 치료방법은 특허 대상이 아니므로, 과거에는 “B질병 치료용 약제 제조를 위한 A의 사용”이라는 ‘스위스 타입(Swiss-type)’ 청구항을 사용했습니다. 현재는 EPC 2000 규정에 따라 “B질병 치료에 사용하기 위한 물질 A”라는 ‘목적-한정 물건’ 형식을 사용합니다.

미국(USPTO): 치료방법 자체를 특허로 인정하므로, “B질병을 치료하는 방법”과 같은 ‘사용방법(Method of Use)’ 청구항이 표준입니다.

일본(JPO): 한국과 유사한 물건발명 형식과 유럽과 유사한 ‘사용’ 청구항 형식을 모두 허용하는 혼합적 태도를 보입니다.

제5장: 특허권의 효력 범위와 침해

한국의 ‘물건발명설’은 특허권의 효력 범위와 침해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권리범위와 직접침해: 특허권이 ‘물건’ 자체에 미치므로, 제네릭 제약사가 특허받지 않은 다른 용도로 판매하더라도 생산·판매하는 ‘물건’이 동일하다면 직접 침해로 간주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미국에서 라벨의 특정 용도를 제외하는 ‘카브아웃(carve-out)’ 전략으로 간접침해를 회피하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존속기간 연장과 효력 제한: 의약품 허가로 인해 지연된 기간만큼 특허권 존속기간을 연장할 수 있지만, 연장된 기간 동안의 특허권 효력은 연장의 근거가 된 허가 대상 ‘물건’과 그 ‘용도’에 한정됩니다. 이는 원특허의 넓은 보호 범위를 제한하여 제네릭 의약품의 시장 진입 가능성을 열어두는 균형 장치 역할을 합니다.

허가-특허 연계제도: 제네릭 허가 신청 시 특허권자에게 통지되고, 특허 분쟁이 발생하면 9개월간 판매가 금지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특허 회피에 성공한 최초의 제네릭은 9개월의 우선판매품목허가(우판권)를 받아 시장을 선점할 기회를 얻습니다.

결론 및 전략

한국의 용도발명 제도는 ‘물건발명설’을 기반으로 특허권자에게 강력한 보호를 제공하는 한편, ‘출원 시 데이터 제출’이라는 엄격한 요건을 부과하고 ‘존속기간 연장 효력 제한’을 통해 균형을 맞추는 독자적인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특히 ‘투여용법·용량 발명’을 전향적으로 인정한 것은 제약사의 개량 발명 전략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따라서 출원인은 연구 초기부터 특허를 염두에 둔 데이터 확보 계획을 수립하고, 다양한 유형의 용도발명을 포괄하는 입체적인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며, 각국의 상이한 제도에 맞춘 글로벌 권리화 전략을 구사해야 합니다.